[3류철학]행복에 관하여
참 살기 좋은 시대다.
사람들의 먹을 것은 풍족하고, 잠자리는 안락하다.
조금만 용기를 내면 고급 식당을 다녀올 수 있고, 한발짝만 더 용기를 내면 해외 여행도 다녀올 수 있다.
아닌 사람들도 많다고?
물론이다. 세상에는 아직도 여러가지 이유로 빈민이 존재하고, 언론은 양극화를 부르짖는다.
어려운 현실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다는 건 충분히 공감하지만
그래도 인류 역사상 가장 살기 좋은 시대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.
편의점 싸구려 햄버거, 라면으로 끼니를 채우는 사람들이 있지만, 아무리 가난해도 무려 햄버거와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시대다.
공동 화장실에 다리도 제대로 못펴는 쪽방촌에 사람들이 있지만, 아무리 가난해도 무려 실내에 몸을 누일 수 있는 시대다.
냉정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, 2023년의 대한민국은, 그리고 대부분의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국가들의 국민들은 참 살기 좋은 시대다.
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참 살기 좋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괴로워하며 살아간다.
이혼하고 아이를 홀로 '임대 아파트'에서 키우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괴로워한다.
금수저 친구가 해외여행을 갈 때 '스마트폰'으로 '여행 유튜버를 볼 수 밖에 없는'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괴로워한다.
여기서 인간이 느끼는 행복의 열쇠를 볼 수 있다.
인간의 행복은 절대치가 아니라 상대치에 의해 결정된다.
행복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기준에 의해 생겨난다면 행복을 얻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.
상대적인 기준선을 정하는 건 '나'다.
'나'가 느끼는 행복의 기준치를 억지로 끌어내리면 항상 행복한 상태가 될 수 있지 않을까?
만약 행복의 기준치가 절대적이라면 그 기준을 달성하지 못한 사람들은 영원히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.
어쩌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선물해 주셨을 수도 있다.
현실에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의 기준선을 낮게 잡았으면 좋겠다.
행복한 상태에서 발버둥치면 더 나은 현실이 찾아올 것이고,
행복한 상태에서 발버둥조차 칠 수 없는 현실이여도 행복하면 된거 아닌가?
수많은 사람들이 외쳐온 '행복하자, 행복해지자' 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.
행복은 '나'에게 달렸다.